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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출판사에서 현대 신학자 평전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데 이 책은 다섯번 째 책이다. 시리즈의 내용이야 어떻든 이러한 기획은 신선하다. 슐라이어마허, 김재준, 폴 틸리히야 잘 알려졌으니 신선할 것은 없지만 폰 라드, 헬무트 틸리케, 헤르만 리덜보스, 헤르만 바빙크의 평전을 쉽게 구할 수는 없다.
책은 크게 바빙크의 생애를 다룬 전반부와 바빙크의 신학을 다룬 후반부로 나뉜다. 생애를 다룬 부분에서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합동과 신학교의 합동을 위해 노력하다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재미가 없다. 후반부를 읽다보면 교의학이 얼마나 따분한 것이지 느낄 수 있으니 따분함을 만끽하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전반부는 1834년 네덜란드 국가 교회에서의 '분리'로 시작하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사를 엿볼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읽어볼만하다. 국가 교회 형태를 띠던 네덜란드 개혁교회(Nederlands Hervormde Kerk)는 1834년 국가의 간섭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일부가 '분리'하게 된다. 이 교회가 기독개혁교회(Christelijke Gereformerde Kerken)이고 캄펜 신학교를 운영한다. 1886년에 다시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 '애통'이란 이름으로 아브라함 카이퍼의 주도아래 국교회를 떠난다. 그리고 교단 신학교는 아니지만 카이퍼의 주도 아래 이미 자유대학교가 세워졌다. 이 '분리'측과 '애통'측 교회, 캄펜 신학교와 자유대학교의 합동을 위해 바빙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다. 결론은 교회의 합동은 성공했으나 학교의 합동은 실패했다. 그런데 합동이란 것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분리'측 교회의 일부는 합동을 거부하게 되고 아펠도른 신학교를 세우게 된다. 합동에 성공한 교회도 후에 31조파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의 분리를 경험한다. 이를 보고 있자면 나는 유해무가 한국의 고신교단과 네덜란드의 '분리'측 개혁교회를 오버랩시키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분리'측에서 다시 분리한 31조파가 더 그럴 듯하겠지만. 책에서는 합동과정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이유를 바빙크의 우유부단함으로 돌리고 있다. 물론 우유부단한 성격이면 더욱 치였겠지만 이쪽과 저쪽을 합동하려는 중재자는 성격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치일 수 밖에 없다. 치이지 않는 중재자? 생각할 수도 없다. 학교간의 합동 문제가 흥미로운데 양측의 입장은 이렇다. '분리'측은 교회가 운영하는 신학교를 원한다. '애통'측은 교회로부터 분리된 대학교를 원한다. 한국측 교회라면 당연히 교회 직영 신학교에 손을 들 것이다. 여기서 바빙크의 입장을 들어보자. 그는 자기의 산앙의 배경인 분리 측을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111쪽 교회 신학교의 장점이자 단점은 교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나쁘게 가면 고립을 면치 못한다. 고립되어 있는 쪽은 진리 수호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지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책의 부제는 보편성을 추구한 신학자이다. 그렇다면 보편성이란 무엇일까? 헤르만 바빙크의 말을 들어보자. 초판 서문을 읽어보면 바빙크가 보편성을 추구한 신학자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옛 것이 단지 옛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찬양하는 것은 개혁신학적이지도 않고, 기독교적이지도 않다. 교의학은 옛 상황이 아니라, 현재의 당위성을 기술한다. 교의학은 과거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미래를 향하여 작업한다." 144-145쪽 여기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및 사회뿐만 아니라, 신학에서도 모방이 다반사이다. 우리가 조국의 신학을 계승하면서 이 신학을 계속 발전시키려 하지 않는한,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241쪽 하나의 보편적인 기독교의 진리는 고백들마다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덜 순수하게 나타난다. 보편기독교는 신앙의 다양성을 초월하지 않고,그 다양성 속에서 현존한다. 215쪽 스위스의 종교개혁, 이른바 개혁신학의 전통이 진리를 독점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145쪽 정리를 해보자. 바빙크가 살던 시대에 네덜란드에서는 개혁신학이 주류가 아니었다. 신학에서도 모방이 다반사라며 통탄하며서 조국의 신학을 계승해야 한다는데 이 조국의 신학이 3개의 신조를 위시한 17세기의 개혁신학을 말한다. 그러니 묻혀있던 전통신학을 살려내서 현재에 합당한 신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보편적인 기독교의 진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진리가 개혁신학 하에서 가장 '순수하게' 나타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보편성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 획득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를 해도 나는 보편성의 내용은 무엇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재미없는 후반부도 잠깐 살펴보자. 악명높은 예정론이 좋겠다. 그에 의하면, 신앙과 회개로부터 점차 선택으로 올라가는 분석적이고 후천적인 순서는 루터파나 로마 가톨릭이 취한 태도이다. 개혁파들은 대부분 선택으로부터 신앙과 회개를 연역하는 종합적이고 선험적인 예정론을 받아들인다. 개혁파 예정론은 인간론적이거나 구원론적이지 않고 신학적이기 때문이다. 172-173쪽 개혁파는 사물의 본질과 이유까지 추적하려 하는데, 이러한 특징을 지닌 개혁파 원리의 유익이 무엇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176쪽개혁파의 예정론을 보자면 그리스 철학을 보는 것 같다. 제1원인이 무엇이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현재에서 반추하는 예정론을 시작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예정론으로 바꾼 셈이다. 게다가 무엇을 위한 선택인가를 함께 설명하지 않는 예정은 무의미하다. 레슬리 뉴비긴이 백번 옳다. 아르미니우스에서부터 촉발된 예정론 논쟁을 보면 정말 눈꼴사납다. 논쟁의 함의를 따질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내 판단에 논쟁 자체는 네덜란드인의 삽질이다. 만약 조선인이었다면 다른 삽질은 했을지언정 이런 삽질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외 재미있는 몇 가지를 보자. 그에 비해 로오만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에게 선거권을 주면 국가가 위기에 처한다는 입장이었다. 84쪽 1차세계대전 중에는 카이퍼가 공개적으로 전범국인 독일을 지지하자, 바빙크는 그를 비판했다. 127쪽 기독교적이요, 개혁파적인 정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시키고, 그의 교회를 보호하며,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멸망시켜야 한다. 이혼이나 주일을 범하는 일은 법적으로 징벌을 받아야 한다. 219쪽1) 1894년 네덜란드에서의 상황이 이렇다. 선거권의 나이 겨우 백 여년이다. 2) 아브라함 카이퍼, 전범국 독일 지지하다! 3) 복음에 대해 법률적인 이해를 가지면 이렇게 된다. 제네바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유럽 사람들은 기독교 세계에 너무 오래 살아와서 국가관이 이럴 수 밖에 없다. 헤르만 바빙크 - 현대 신학자 평전 5, 보편성을 추구한 신학자 (유해무/ 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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